안팎으로 어그러진 게임 – 야차 – 백 개의 검 이야기
로그라이크라는 장르를 아는가? 그 이름과도 같이 “Rogue”라는 게임에서 파생된 하나의 장르다. 로그와 비슷하다고 해서 “-like”라는 접미어가 붙었다. 이 얼마나 직관적인 이름인가. 하지만 사실 게임에 큰 관심이 없다면, 모르는 말을 모르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지금은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며 의미나 정의가 상당히 많이 바뀌었으나, 큰 틀에서 보자면 플레이할 때마다 무작위로 생성되는 스테이지를 반복 플레이하며 스테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클리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이라고 이해하면 현대 로그라이크 장르의 특색을 얼추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 장르도 팬들이 자의적으로 나눈 “로그라이트”에 해당하긴 한다). 이러한 로그라이크의 핵심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꼽자면 “무작위”와 “반복”이다.

(출처: Wikipedia)
“야차 – 백 개의 검 이야기”라는 게임은 로그라이크를 표방하며 발매된 게임이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타케토라라는 호랑이 캐릭터가 발매 전부터 굉장히 큰 이슈를 몰고 왔는데, 정식 발매 전부터 무수한 2차 창작이 쏟아질 정도였다. 더욱이 타케토라의 면면을 살펴보면 수인 팬이라면 누구든 알 법한 아티스트들이 제작에 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타이틀은 남성 주인공 한 명과 여성 주인공 두 명이라는 구성인데, 어찌 보면 여성 주인공 두 명은 상업성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타케토라에게 힘을 쏟았다는 느낌을 준다.

(출처: IGN)
게임 진행은 단순하다. 스토리를 보고, 스테이지를 나아가며 캐릭터를 강화하고, 보스를 클리어하고, 만약 게임 도중 죽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무기를 구입하거나 능력치를 강화한 뒤 스테이지를 처음부터 다시 도전한다. 이런 과정을 수없이 되풀이하면 된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게임을 반복할 때마다 스테이지 구조나 구성, 획득하는 아이템이 무작위로 달라지기 때문에 매번 어느 정도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출처: Stove Store)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게임은 깊이가 없다. 그래서 금방 질린다. 로그라이크에서 가장 치명적인 단점을 그대로 안고 있다.
우선 이 작품에는 3명의 조작 가능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각자 옴니버스 방식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다시 말해 각 캐릭터의 스토리 사이에는 접점이 전혀 없다. 각 스토리에 같은 NPC들이 등장하지만, 그 NPC들의 설정은 조금씩 다르다. 일본 서브 컬처에는 한 인물을 다양한 작품에 각각 다른 역할로 등장시키는 “스타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적극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NPC들에게는 깊은 서사가 없다. 간단한 배경 설명은 있지만 그것이 게임 플레이에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지 못하고 겉돈다. 그래서 NPC들은 플레이어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화자가 아니라, 단순한 오브젝트에 그치고 만다.
이 문제는 보스나 게임 진행 방식, 전투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각 캐릭터는 같은 스테이지, 같은 몬스터, 같은 보스를 공유한다. 보스나 몬스터의 공격력, 방어력 같은 능력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공격 패턴은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서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바꿀 때마다 사실상 같은 과정을 세 번 반복해야 한다.

(출처: PRO GAME GUIDE)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각 캐릭터의 전투 방식과 무기는 다르게 설정되어 있어 전투 자체는 어느 정도 신선함을 준다는 것이다. 시구레는 검과 방패를 활용한 균형 잡힌 전투를 체험할 수 있고, 사라는 작은 몸집을 활용한 빠른 대시 공격과 쌍검을 사용한 전투를 체험할 수 있다. 타케토라는 육중한 체격 탓에 움직임은 둔하지만, 활을 사용한 원거리 공격으로 최대한 적을 제압해야 한다. 캐릭터마다 무기가 7개 존재하며, 전투에는 원하는 무기 2개를 들고 나가 번갈아 사용할 수 있다. 각 무기는 능력치와 특수 능력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으므로, 조합에 따라 다양한 전략을 실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재미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똑같은 몬스터와 보스를 수십 번 처치해야 한다. 아무리 카레를 좋아해도 카레라이스, 카레빵, 카레 우동만 계속 먹으라고 하면 질려버릴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게임은 딱 그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게임 외적으로도 상황은 순탄치 않다.
우선 플랫폼과 국가별 유통사가 전부 달라 버전이 통일되지 않았다. 접근성이 가장 좋은 PC 플랫폼인 Steam은 제작사가 직접 유통을 담당하고 있어서, 여기서 구매하면 한국어 자체 번역과 일부 기계 번역이 섞인 버전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콘솔 쪽은 일반적으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한국에서 구입한 “야차 – 백 개의 검”과 외국에서 구입한 “야차 – 백 개의 검”에 수록된 한국어 번역이 서로 다르므로 외국에서 이 작품을 구입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 유통 버전은 한국 유통사가 자체 번역해 전반적으로 번역이 깔끔한 반면, 외국 유통 버전은 기계 번역을 사용해 퀄리티가 매우 낮다.
게다가 글로벌 유통사와 제작사 사이에 트러블이 발생해, 현재 Steam 버전을 제외한 모든 콘솔 버전은 사후 지원이 모두 끊긴 상황이다. 제작사는 콘솔 버전의 유통 및 판매를 유통사에 일임하고 있어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글만 남긴 채 지금까지 별다른 진척이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발매 후 타케토라 스토리 일부를 수정하고 콘텐츠를 추가한 패치도 Steam 버전 한정으로만 배포되었으며, 콘솔 버전은 발매 이후 사후 지원 업데이트를 전혀 받지 못한 상태다. 야심 차게 내놓은 추가 콘텐츠 발매 로드맵도 모조리 어그러져 전 세계 플레이어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처럼 “야차 – 백 개의 검 이야기”는 게임 내적으로도 아쉬움이 많은데, 게임 외적으로도 문제가 끊이지 않아 여러모로 안타까운 작품이 되어버렸다. 호랑이 타케토라의 2차 창작 역시 게임 발매 이전보다 그 수가 확연히 줄어든 것을 보면, 설령 발매를 연기하더라도 이런 문제들을 정리한 뒤 내놓았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양한 수인 아티스트들이 참가한 인디 게임이 이렇게 침몰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기에,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된 후 사후 지원을 통해 다시 한 번 날아오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