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길을 찾았구나 – 소닉 레이싱 크로스월드
소닉 시리즈는 1991년 첫 작품 발매 이후 어느덧 약 35년이 되어가는 초장수 IP 가운데 하나다.
당시 라이벌 관계였던 슈퍼 마리오 시리즈와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SEGA 하드웨어의 빠른 처리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슈퍼 마리오 시리즈와는 다른 “스피드”를 앞세웠고, 그 스피드는 소닉 시리즈를 상징하는 특징이 되었다.

(출처: SEGA 공식 YouTube)
그런 소닉 시리즈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이질적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소닉 레이싱” 시리즈다.
소닉 시리즈 내부에서도 외전으로 분류되는 이 카테고리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하나의 의문점을 제시한다. “그냥 달려도 빠른데 굳이 왜 뭘 타야만 하는 걸까?”

(출처: GEEK TO GEEK MEDIA)
이 소닉 레이싱 시리즈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름 유서가 깊다.
첫 작품은 1994년에 발매된 “소닉 드리프트”라는 작품으로, 소닉 메인 시리즈가 나온 지 3년 만에 나온 실험작이었다. 이 타이틀은 당시 SEGA의 휴대용 게임기였던 게임 기어로 발매되었는데, 하드웨어 특성을 생각하면 미니 게임 감각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게임 방식도 스토리는 없고, 그저 소닉 등장인물들이 차를 타고 하염없이 달리며 경주를 벌이는 것이 전부다.

(출처: The Pixel Empire)
이후에는 “소닉 R”이라는 3D 레이싱 타이틀로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이 게임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보컬 배경음악이었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MIDI 음원으로 한정된 악기와 음역을 다루던 것에 비해 “소닉 R”은 당시 기술력을 최대한 활용해 풀 보컬 배경음악을 도입했다. 나는 “소닉 R”의 “Living in the city”라는 곡을 무척 좋아하는데, 지금도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다.

(출처: imdb)
아무튼 서론이 길었는데, 소닉 레이싱 시리즈는 이처럼 “그냥 달려도 빠른데 왜 굳이”라는 부분에 답을 내리려 애썼고, 그 과정에서 온갖 괴작과 평가가 좋지 않은 작품이 나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소닉 레이싱 시리즈는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2025년, 모든 팬의 걱정을 불식시킬 만한 소닉 레이싱 시리즈 최신 타이틀이 등장했다.
“소닉 레이싱 크로스월드”는 지금까지 나온 소닉 레이싱 시리즈의 특징을 집대성해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줄이는 동시에 다른 레이싱 게임과 차별화를 꾀한 작품으로 보인다.
우선, 여타 소닉 레이싱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스토리는 곁다리 수준이다. 사실 전부 넘겨도 스토리 이해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시리즈 팬들이라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나, 전체 소닉 시리즈의 세계관을 암시하는 대사가 이따금 등장해 팬들에게는 추억을, 신규 유저들에게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물론 이런 건 어디까지나 부가 요소다. 레이싱 게임은 결국 “달리는 맛”이 있어야 한다. 이번 타이틀 “소닉 레이싱 크로스월드”는 그 달리는 맛을 극대화해 플레이어에게 큰 쾌감을 준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스피드”다. “소닉”과 “레이싱”이 합쳐진 장르인 만큼 어중간한 스피드는 용납되지 않을 텐데, 이번 타이틀의 스피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오히려 스피드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난이도가 급상승할 우려가 있는데, 그 중간 지점을 잘 찾아냈다. 물론 게임 내에서 속도 조절이 가능하지만, 전반적인 저점이 다른 작품보다 약간 높은 느낌이 든다.

(출처: 글로벌e)
그리고 이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시시각각 변하는 코스다.
이러한 코스 변화는 약 10년 전에 발매된 시리즈 작품 “소닉 & 올스타 레이싱 트랜스폼드”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다. “트랜스폼드”에서는 코스가 무너지거나 새로운 구조물이 생기며, 그때마다 머신이 차량 + 비행기 + 배 형태로 변해 같은 코스라도 길 자체가 수시로 바뀌었다. 배경 오브젝트에 불과했던 코스와 플레이어가 직접 상호작용하는 느낌을 주어 코스를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고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관점이 조금 다르다.
첫 번째 랩을 돌면 1등에게 3개의 선택지가 주어지고, 그 선택에 따라 2랩의 코스 스테이지가 달라진다. A 코스를 달리던 플레이어가 2랩에서는 갑자기 B 코스를 달리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3랩에서는 다시 A 코스로 돌아오지만, 1랩과 달리 장애물이 추가되어 다른 느낌으로 레이싱을 즐길 수 있다.
이처럼 A – B – A’ 또는 A – C – A’와 같이 하나의 코스를 다양한 배리에이션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매번 새로운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플레이어는 같은 코스를 달려도 중간에 어떤 길이 열릴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레이스에 임하게 된다.

(출처: PlayStation Blog)
또 하나는 아이템 밸런스가 절묘하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보통 아케이드 레이싱의 “아이템 전”은 속된 말로 “개싸움”이 되기 쉽다. 후속 순위일수록 역전을 노릴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높고, 공격 아이템 대부분은 1위나 2위를 우선 노리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실력자들이 많은 레이싱에서는 의도적으로 후반부 순위를 유지하다가 막판에 좋은 아이템을 얻어 역전극을 노리는 일이 흔했다. 이 과정에서 상위권에 있던 플레이어는 불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타이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리한 방법을 사용했다.
기존의 구조, 즉 상위권을 우선 노리는 공격 아이템과 후속 순위에서 좋은 아이템을 얻기 쉬운 시스템은 유지하면서, 아이템 성능을 과하지 않게 조절했다. 공격 아이템을 연달아 맞아도 한 번에 하위권으로 떨어지는 일도, 좋은 아이템 하나로 단숨에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는 일도 거의 없다. 또한 “아이템 무작위 교체” 기능이 등장해, 모든 플레이어가 가진 아이템이 사라지거나 특정 플레이어끼리 교체될 수도 있다. 하위권에서 한방을 노리고 아이템을 아껴도 누군가가 “아이템 무작위 교체”를 쓰면 전략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아끼다가 뭐 된다”를 겪을 수도 있다. 이처럼 아이템 성능 조절과 실시간 아이템 교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의도적으로 후속 순위를 유지하는 전략은 힘을 잃었다. 후속 순위를 유지하다가는 정말로 후속 순위로 끝날 가능성이 크니 플레이어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출처: gam3s.gg)
물론 모든 게 좋지만은 않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건 아이템 잠금 해제에 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아이템 대부분이 단순 외형 변경이라 필수는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스킨을 얻기 위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반복 플레이가 요구된다. 레이싱 게임 특성상 플레이 시간이 짧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건 이해하지만, 그 고육지책에도 정도가 있지 않을까. 정말 “선을 넘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출처: Gamer Social Club)
그리고 한정 이벤트도 많이 아쉽다.
한정 이벤트 보상에는 스킨뿐 아니라 실제 레이싱 성능에 영향을 주는 아이템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벤트 개최 기간이 약 사흘 정도로 지나치게 짧고, 주중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바쁜 회사원들은 얻고 싶어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또한 이벤트가 언제 열리는지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였다. 게임에 꾸준히 접속해도 아무리 빨라도 약 사흘 전에야 이벤트 공지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사실상 업무 태만에 가깝다.

(출처: Sonic Racing Crossworld 공식 홈페이지)
이처럼 “소닉 레이싱 크로스월드”는 기존 소닉 레이싱 요소를 하나로 모아 장점을 부각하고 단점을 보완해 향후 소닉 레이싱 시리즈의 이정표를 제시한 작품에 가깝다.
실제로 게임을 즐기면 알 수 있듯 이번 타이틀에서 보이는 것은 “커다란 한걸음”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단단한 한걸음”에 가깝다. 위에서 언급한 단점들도 게임 자체보다는 게임 외적 문제에 가까워 충분히 개선 가능하다고 본다.
이번 타이틀은 소닉 팬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즐길 수 있고, 가볍게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기쁘다. 완벽한 수인은 아니지만, 소닉 시리즈에서 가끔 얼굴을 비추는 악역 자보크라는 캐릭터가 특정 영역[?]에서 제법 인기가 좋을 것처럼 생겼으니, 속는 셈치고 한 번 플레이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본다.

(출처: Sonic Wiki 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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