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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오기 힘든 감성 – 꾸러기 수비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아이들이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라는 12간지를 외울 수 있게 만든 애니메이션, “꾸러기 수비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꾸러기 수비대”의 원래 제목은 “12전지 폭렬! 에트레인저”로, 일본어로 12간지를 干支(えと, Eto)라고 지칭하는 것에서 나온 나름 멋진 제목이다. 한국에서는 당시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꾸러기 수비대”라는 명랑만화 느낌의 제목으로 바뀌었지만, 한국 내 인지도가 워낙 커서 지금은 이 이름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꾸러기 수비대”로 더 유명할 것이다
(출처: Fandom Dub Wiki)

12간지를 내세운 이상 메인 캐릭터도 12명이 넘는다.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강아지, 돼지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과 이들을 총괄하는 인간 오로라 공주, 그리고 악역으로 등장하는 고양이까지 포함된다. 말 그대로 동물 대잔치인데, 이들이 인간의 모습을 가진 탓에 자연스럽게 수인 대잔치가 되어버렸다. 12간지 순서에 따라 쥐 수인 똘기(일본명 바쿠마루)가 리더를 맡고 있으며, 각자의 특기를 내세워 세계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닭 수인인 키키(일본명 타르트)는 초반에 인간형으로 변신한 뒤 대부분 장면에서 인간형으로 나온다. 어른의 사정이 있었겠지…
(출처: YouTube)

설정뿐 아니라 스토리도 매우 독특하다. 이들이 사는 세계는 ‘동화나라’(일본명 노벨 폴)라는 기둥에 지지되어 있고, 그 안에는 우리가 아는 수많은 동화와 소설이 존재한다. 악역들은 이 이야기 속에 잠입해 설정을 바꾸거나 등장인물로 변신하는 등 여러 방해공작을 펼쳐 이야기를 잘못된 결말로 이끌려고 하며, 주인공들은 이들을 저지해 원래 결말을 되찾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동화나라’라는 이름으로 동화에 한정된 것으로 현지화됐지만, 실제로는 ‘모비 딕’ 등의 고전 소설도 포함된 것을 보면 원래 의도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이야기 전체’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서유기”와 같은 고전 소설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여기에서는 “서유기” 세계가 서부극 세계로 바뀌어서 수녀가 나오고 총싸움이 벌어지지만 말이다
(출처: YouTube)

이야기가 뒤틀리는 방식도 지금 생각하면 참 기상천외하다. 예를 들어 “신데렐라” 편을 보자.
원래 스토리라면 새엄마와 자매들에게 구박받은 주인공이 착한 마녀의 도움으로 성 무도회에 가고, 12시가 되기 전에 돌아오다 구두를 잃어버리고, 이를 바탕으로 왕자가 주인공을 찾는 방식으로 결말이 이어진다.

하지만 작품 속 신데렐라 세계는 중세 콘셉트 테마파크 같은 놀이공원으로 바뀌어버린다. 주인공들은 이야기가 바뀐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마을 사람 대부분은 직원이었고, 밤이 되어 귀가한다는 것도 퇴근이었다. 무도회는 클럽으로 바뀌었으며, 12시 전에 돌아가야 하는 이유도 마법이 풀리기 때문이 아니라 막차가 끊기기 때문이었다. 악역은 새엄마로 분장해 주인공이 남긴 구두를 깨뜨려 이어질 인연을 막으려 하고, 이 장면에서 정체가 드러난다. 주인공들이 악역을 저지하면 배경과 이야기 구조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황당하지만 클리셰를 비트는 창의적인 전개로 당시 큰 인기를 끌었고, 동년배 아이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놀라지 마세요, 이건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입니다. “아기돼지 삼형제”에 왜 늑대 형태 로봇이 나오는지는 묻지 마세요
(출처: Fandom Dub Wiki)

놀랍게도 이 작품을 만든 제작사는 “샤프트”다.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다면 모를 수 있지만, “이야기 시리즈”와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를 만든 바로 그 제작사다. 초기작에 해당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샤프트의 대표작이라면 역시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인데, 그 작품이 충격적인 전개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것처럼 “꾸러기 수비대” 역시 지금 돌이켜보면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전개로 유명하다. 혹시 볼 사람이 있을까 싶어 자세히는 말하지 않겠지만, 절망의 끝까지 인물과 시청자를 몰아붙이는 전개가 펼쳐진다는 점은 기억해두어야 한다.

아래에 있는 “シャフト”는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그 샤프트가 맞다
(출처: YouTube)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작품이 일본에서는 큰 인지도가 없다는 점이다.
당시 한국에서 방영되던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는 일본에서 상업적으로 실패해 저렴하게 들여온 작품도 섞여 있었고, 이 작품 역시 그런 케이스 중 하나였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대박을 터뜨렸으니, 세상일은 알 수 없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판권이 꼬여 장난감이나 비디오 테이프 같은 영상 매체가 거의 나오지 않았고, 재방영도 거의 없었다. 결국 ‘알 사람만 아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저작권 문제 때문인지 영상 사이트에 버젓이 올라와 있으며, 검색만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다. 물론 작품 존재 자체를 모르면 검색조차 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호랑이 수인인 호치(일본명 가오)의 특수 능력은 전용 선글라스 착용 시 호랑이로 변신하는 것이다. 한국 미방영 에피소드 중 하나인 “카구야 공주”에서는 아기인 카구야 공주를 달래주는 역할로 전락(…)했지만 말이다
(출처: YouTube)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점은, 매력적인 수인 캐릭터가 많은 작품임에도 일본 수인 팬덤에서조차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2명이나 되는 매력적인 수인이 등장하니, 만약 요즘 나왔거나 조금이라도 인지도가 있었다면 지금도 꾸준히 2차 창작이 나오는 황금기 캐릭터풀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스토리와 설정까지 탄탄해서, 수인 팬덤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수작 애니메이션 반열에 올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국에서 인지도가 바닥이니 리마스터나 리메이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2025년 9월 일본 수인 온리전 ‘케모켓(Kemoket)’에서 “꾸러기 수비대”를 메인으로 내세운 부스를 하나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하나 구입하려 했으나,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결국 깜빡하고 말았다. 나의 기억력과 체력을 한탄할 따름이다.

최근 애니·서브컬처 시장을 보면, 이렇게 대놓고 수인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앞으로 더 찾기 어려워질 것 같다. 그래서 이 작품이 묻힌 것이 더욱 아쉽다. 리메이크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리마스터를 통해 재방영이 이루어진다면 좋겠다. 요즘은 SNS도 발달해 입소문만 타면 이 매력적인 작품의 존재가 금방 알려질 것이다. 어쩌면 “꾸러기 수비대”가 외면받은 이 현실이야말로, 원래는 수인 팬덤에서 큰 사랑을 받았어야 할 작품이 어떤 이유로 인해 ‘없던 일’이 되어버린 망가진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적어도 일본에서도 한국만큼의 인지도가 생기면 좋겠다. 물론 안 좋은 방향으로 유명해지는 건 사양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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